중국시가넷 - 고서 복원 - 고서 중 진나라와 6 개국의 분야
고서 중 진나라와 6 개국의 분야
이때 진나라는 아직 약하여, 강역은 춘추 초기와 비교하면 거의 변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만 그 주변 나라는 너무 강해서 진나라는 외진 곳에 위치하여 인구와 식량이 그 주변 나라보다 못하다.
기원전 1 및 36 1, 상양이 변법하기 전.
이때 진나라는 방금 위국과 한바탕 싸웠다. 당시 진나라의 맏이는 능력이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진나라의 국력은 강대한 위국과 대적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맏이는 상심할 뿐만 아니라, 하서까지 위에게 빼앗겼다. 진 () 나라의 수도조차도 위 () 나라에 공격당할까 봐 여양 () 에서 정양 () 으로 옮겼다.
2. 기원전 36 1 년, 진혜문이 왕이다.
상양이 법을 바꾼 후 진나라의 국력이 크게 증강되어 더 이상 굴욕적인 진나라가 아니다.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바촉은 이미 진나라에 의해 멸망되었고, 이곡도 진나라에 항복했다. 원래의 하서조차도 모두 위국에서 빼앗은 것이다.
기원전 293 년, 이궐 전투.
동진중원의 통로를 열기 위해 진국파 대장인 백기는 이궐에서 위국, 한국, 동주 연합군과 싸웠다. 전투의 결과는 말할 것도 없이 진나라가 전승을 거두었다. 이때부터 진군은 중원에 들어가 사슴을 쫓는 중원 과정을 시작했다.
4. 기원전 279 년.
춘추시대든 전국시대든 초국은 매우 강력한 나라이다. 광활한 강역은 그에게 충분한 인구를 주었기 때문에 초국은 부끄럽지 않은 남방 패주이다. 그러나, 이름 의 앞에 흰색, 추 패배, 많은 토지 의 손실을 기대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진나라의 세력은 초나라의 복지로 발전하여 초나라의 도성까지 진나라의 군대 앞에 노출되었다.
5. 기원전 260 년 장평전.
추 진 (Chu) 은 진 (Qin) 나라에 패배하여 조 (Zhao) 만이 남았고 진 (Qin) 과 대규모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앞에서 조 패배는 고사하고 조 포로 40 만 명도 파묻혔다. 이런 상황에서 진 () 나라가 6 국을 통일하는 것은 곧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