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가넷 - 찬송가 - 주목을 훔치지 말고, 주목받지도 말고,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십시오 - 주일 설교

주목을 훔치지 말고, 주목받지도 말고,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십시오 -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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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9편

1 (다윗의 시) 하나님의 아들들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영광과 능력을 돌릴지어다

2 여호와께 돌리라 여호와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 그에게 영광이 있을지어다 성결의 옷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3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께서 물 위에 우렛소리를 내시느니라

4 여호와의 음성은 능력이 있고 여호와의 음성은 위엄이 충만하도다.

5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시고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으시느니라.

6 또 그들을 송아지처럼 뛰게 하셨고 레바논과 세리온도 들송아지처럼 뛰게 하셨습니다.

7 여호와의 소리가 불꽃을 가르시느니라.

8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시느니라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하시느니라

9 여호와의 음성이 암사슴을 낳게 하시니 나무들이 떨어져서 깨끗해졌습니다. 그의 성전에 있는 자마다 그의 영광을 선포하느니라.

10 여호와께서 홍수 가운데 왕으로 앉으셨으니 여호와께서 영원히 왕으로 앉으셨느니라.

1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시며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을 주시리라

오늘 본문 시편 29편의 저자는 1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여호와께 영광과 능력을 돌리라고 명령하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중요한 것은 반복해서 말해야 하므로 첫 구절에서 두 번 주님께 말씀드리십시오. 두 번째 구절에서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소서!

중요한 것을 세 번 말하는 관행이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하하하)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영광은 빼앗길 수도 없고, 우리 스스로 빼앗을 수도 없습니다. 또한 오늘 또 다른 구절인 누가복음 3장 15-22절에 보면, 예수님의 영광과 지위는 세례 요한이 감히 간과하거나 빼앗을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15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오시기를 고대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요한이 그리스도라고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16 요한이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느니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분은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다. 17 그는 손에 키를 가지고 타작마당을 정결하게 하고 밀을 곳간에 모아 쭉정이를 꺼지지 않는 불로 태울 것입니다. 18 요한은 그 밖에도 많은 말로 사람들을 권면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19 그러나 분봉왕 헤롯은 자기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와 그가 행한 모든 악한 일로 인해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20 또 한 가지 일이 그에게 추가되었습니다.

21 백성도 다 세례를 받았고,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비둘기 같은 영이 그에게 임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당신과 함께.

15절에 보면 그 당시에 사람들은 고난 가운데서 자기들을 고난의 바다에서 구원하실 메시야가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이 행한 일을 보고 마음속으로 투덜거리며, 세례를 베푸는 이 사람이 과연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인지 의심했습니다. 이 시대에는 공로와 각광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공로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더욱이 당시 세례 요한이 얻은 명성과 인지도는 이미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오실 그리스도요 메시야로 착각하게 하고 감탄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알았습니다. 세례 요한이라면 세례 요한은 그것을 인정해도 괜찮았습니다. 그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세례 요한이 평범한 사람일 수 있겠습니까?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잘 알고 있으며, 장차 올 모든 사람의 신발끈을 풀어줄 자격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16 요한이 이르되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더라

그분은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다.

여기에 기록된 세례 요한에 대한 반응은 시편 29편과 같습니다. 세례 요한이 한 일은 예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지 결코 영예와 영광을 취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지금 자기가 물로 세례를 주고 있는 것과 장래에 오실 분이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예수는 아직 정식으로 데뷔하지도 않았고, 그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 요한은 자신이 그들이 기다리던 그리스도라고 감히 주장하지 못했고, 감히 자신의 한계를 넘지도 못했습니다.

무대 앞과 위에서 섬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당신이 설교를 하든, 성악을 인도하든, 피아노를 연주하든, 다른 사람들 앞에 보이는 어떤 일이든 예배가 끝나면 형제자매들이 찾아와서 설교가 너무 좋다, 아름답다고 칭찬할 것입니다. 목소리도 좋고, 피아노 연주도 얼마나 잘하는지. 한두 번 우리는 부끄러워하며 수줍게 “고맙습니다”, “너무 칭찬해 주십니다”,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직도 마음은 불안하고, 모두가 예의 바르고 친절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여러 번 끊임없이 칭찬과 격려와 인정을 받은 우리는 점차 자신이 매우 재능 있고 다재다능하다고 느끼면서 조금씩 안주하게 되고, 나도 모르게 자부심의 징후가 커지기 시작합니다. 천천히, 조금씩 우리는 여전히 입으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변하여 더 이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 영원히. 우리는 누가 힘을 주시고, 누가 평안의 축복을 주시는지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 자신의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우리는 천성적으로 똑똑하고, 모든 것이 우리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천둥번개가 치는 날씨에 운전을 시도해 본 적이 있나요? 머리 위로 먹구름이 끼었고, 그날은 마치 밤 같았습니다. 폭우로 인해 시야가 100미터도 안 보일 정도로 줄어들었고, 좌우로 미친 듯이 번개가 쳤습니다. 천둥소리가 너무 커서 귀가 먹먹해질 정도였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경험이 여러 번 있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번에는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우리가 멸망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차에 번개가 칠까 봐 걱정하다가 쉬었습니다. 지적으로 나는 자동차 외부의 재료가 전기를 전도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 순간에 정말로 음성의 위력과 위엄을 경험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은 백향목을 꺾고, 광야를 흔들 수 있습니다. 암사슴을 낳게 하라.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천둥소리는 우리 인류에게 충격을 주며, 주님이 누구시며, 천지 만물의 주가 누구신지 강렬하게 일깨워 줍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지혜와 능력이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대에 인간은 자신들이 똑똑하다고 생각하여 바벨탑을 쌓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인간은 유기체를 복제하고 유전자를 바꾸려고 하는 등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시 신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첨단 기술 장비를 즐기고 우리가 만든 품목을 사용하여 건강을 개선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며 수명을 연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늘이 비를 내리고 땅이 식물이 자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살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교만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구와 그 위의 모든 피조물을 존중할 줄 모르게 만듭니다.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줄 알면, 그분을 존경할 줄도 알게 되고, 그분의 손으로 지으신 모든 것을 존중할 줄도 알게 되며, 소중히 여기고 보호할 줄도 알게 되고, 선한 청지기의 할 일을 행할 줄도 알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교회 예배 외에도 우리는 삶의 다른 부면에서도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청취자들의 어려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라디오에서 라이브 쇼를 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라이브 방송이기 때문에 정보를 찾기 위해 책을 뒤질 시간이 없습니다. 질문을 듣고 이해한 후에는 라이브로 즉시 답변해 드립니다. 비록 밤 10시 이후의 방송임에도 불구하고 밤에는 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사람들이 피곤해하는데, 그럴 때 마이크가 켜져 있는 한 활력이 넘칩니다. 청중의 문제가 아무리 어렵고 복잡하더라도 나는 아무런 노력 없이도 너무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결혼과 가정의 문제부터 정신질환, 대인관계, 취업과 업무의 문제까지, 생각할 수 있는 것과 예상치 못한 모든 것까지 상담실의 상황은 더욱 다채롭다. 놀라운 점은 내가 모든 것을 내 통제하에 두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환자들이 계속해서 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성장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칭찬도 많이 받고 뿌듯해졌어요.

저는 성격이 상당히 내성적이고 무관심한 성격이라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적성검사를 해보니 상담사가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나는 사교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집에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는 평범한 집돌이이고 매우 가정적인 사람입니다. 제가 상담사가 된 것은 제가 좋아해서가 아니고, 과거에 어떤 특별한 경험이나 능력이나 은사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에 상담사로 헌신한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상담사와 교사로서 전 시간 직장에 들어가도록 나를 분명히 부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부르심에 합당한 상담의 은사를 주셨고, 나에게 맡기신 일을 성취할 수 있도록 친히 주셨다고 믿습니다. 사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교사로 부르셨습니다. 먼저 저에게 충분한 실무 경험을 주시고, 그 다음에는 Xinglin으로 옮겨 교사로 일하게 하셨습니다. 내가 교만하여 내 안에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잊어버릴지라도 내게 능력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무술소설에서 묘사된 것과 똑같아서 내면의 힘이 새어나오고, 무술이 전혀 쓸모가 없고, 힘이 전혀 쓸모가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사건의 문제에 대해 아무런 단서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상황은 매우 당혹스럽고 당혹스럽고 굴욕적이었습니다.

음성으로 말하면 시편의 음성은 장엄하고 엄숙한데, 누가복음의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은 아주 다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그 위에 내려오시며 하늘로부터 음성이 나더라. , 이르시되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세례 요한은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빼앗지 않았고 그 영예를 빼앗지도 않았습니다. 하늘과 땅과 만물의 주님이시며 세상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세례자이십니다. 얼마나 큰 영광이고 은혜입니까? 7장에서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보십시오:

24 요한이 보낸 사람들이 떠난 후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시작하시니라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하여 저 멀리 나갔더냐 황야를 볼까?" 바람에 날리는 갈대를 보고 싶나요? 25 밖에 나가면 도대체 무엇을 보고 싶나요?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고 싶나요? 좋은 옷을 입고 즐겁게 하루를 보내는 사람은 궁궐에 있다. 26 밖에 나가면 도대체 무엇을 보고 싶나요? 선지자를 만나고 싶나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은 그 선지자보다 크니라 27 기록된바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네 앞에 길을 예비하리라 기록된바 이 사람이니라 2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느니라 하나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누가복음에는 그날 예수님께서만 세례를 받으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에야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예수 위에 임하시더니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이는 예수가 아들이심을 증명하느니라 요한이 영광을 돌리게 될 이가 바로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다른 위치에 두시고 우리에게 다른 정체성을 주셨습니다. 높은 직업과 낮은 직업의 구별이 없고, 높은 봉사와 낮은 봉사의 구별이 없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며 우리가 그 일을 잘하도록 헌신해야 합니다. 자신을 얕보거나 자신이 부족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필요한 능력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차갑고, 남들과 대화하기 싫어하고, 교만하다고 여겨지는 저처럼, 하나님께서도 저를 심리상담사나 신학교 강사로 쓰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자 하는 마음과 영광을 받을 자에게 영광을 돌리기를 기억한다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