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시대에는 대변혁, 대격동기, 백가쟁명, 사상학술이 휘황찬란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한무제는 사상의 통일을 강화하기 위해 동중슈의 의견을 받아들여 백가를 면직시키고 유술을 독존하였다.